외로움과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욕구의 유전적 기준

건강|2020. 4. 29. 09:03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욕구의 유전적 기준

외로움에서 유전자의 영향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단지 특정 개인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사회적 유대감을 더 많이 필요로 하거나, 혹은 그런 유대감이 없는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혹은 둔감하거나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한 사람이 한순간이든 평생이든 외로움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는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 좌우됩니다. 또 그 역으로, 그 환경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포함해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핫소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음식에 핫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그러나 고추가 약간이라도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얼음물부터 찾는 사람도 있죠.

 

이처럼 인간의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갈망도 다양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게하고 싶은 욕구나 소외에 대한 민감도가 상당히 떨어져 친구나 가족과 헤어져도 별 고통없이 견뎌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안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주 긴밀한 사회적 접촉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외로움에 빠져들었다가 곧바로 빠져나오곤 합니다.

건강한 인간이라면 특정 순간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건 정상입니다.

 

유대감이 사라질때 느끼는 고통은 인간 고유의 특성입니다.

외로움을 느낀다는건 그 사람이 사회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러니 하겠지만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아주 사회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고독감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사회적 욕구에 둔감화되어 자신의 환경을 적절히 사회적으로 조성하여 이끌지 못하고, 신체적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그런것들이 다시 부정적인 사고와 감각, 그리고 행동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우에 한합니다.

 

 


외로움의 고통은 파괴력이 강합니다.

 

사회적 소외감과 단절감, 고립감은 생각과 느낌만이 아니라, 몸 자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나이가 들면 쇠약해집니다. 하지만 외로움은 그 쇠약을 가속화 시킵니다.

외로움은 면역세포에서 DNA전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생리적 영향력은 유대감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만성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악순환인 것입니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낄때와 뇌에서 물리적 고통을 느낄때 활성화되는 영역은 서로 같은 영역을 공유합니다. 

이에 대한 고전적인 실험의 예 중 하나가, 의도적으로 어떤 개인을 소외감을 느끼게끔 조성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서 그 과정을 fMRI로 뇌를 촬영해보면 물리적 고통을 유발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는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외로움, 소외감은 멘탈공격 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아프다" 라는 말입니다.

보통 어떤 것에 대한 고통이 있을 때,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 상황을 피하라" 라는것을 몸이 알려주는 신호를 뜻합니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이에 대한 답은 "집단에서 소외된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그 상황을 피해서 생존하라" 라는 몸의 신호라는 뜻입니다.

 


외로움은 궁상떨때 느껴지는, 그냥 씹어삼키고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지말라고 몸이 알려주는 신호인 것입니다.

오랜기간 외로움이라는 느낌에 지속된 사람은 실제로 건강에 상당한 영향이 있음이 그동안의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져 왔습니다.

 



대부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사회활동을 다양한 형태로 왕성히 하는 사람들은 이런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갑자기 뜬금없지만 요즘 티비에 자주 나오는 중국요리사 이연복 같은 사람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가지 일을 벌렸고,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 망이 점조직으로 아주 끈끈하게 가족을 중심으로 견고히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밑에 제자들도 많이 있구요.  


이연복이나 백종원과 같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회적망이 다양합니다.

외로울 틈이,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건강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아주 질 높은 삶을 경험하다 갑니다.

늙어서 탑골공원 배회하면서 말걸기 쉬운 사람한테 말걸어서 바둑 둔다거나 "내가 뭔가 하는 기분" 낼려고 억지로 뭘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등산 모임 같은것도 안찾아 다니고 말이죠. 

 


그치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어떨까요?
이런 사회적 유대감을 한국에서는 흔히 사회생활하는 나이에는 직장에서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결혼하면 직장에서 결혼식 하객 머릿수 다 채워주곤 하죠. 

근데 문제는, 항상 그렇진 않지만 많은 경우 대기업이나 큰 회사같은 거대 조직의 일부인생의 몰개인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 샐러리맨 형태의 이런 일터에는 이런말이 있습니다. 

"조직은 기억력이 없다"   

은퇴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직장에 기댈 것이 아니라, 무언가 지속가능한 사회적망을 찾아 봐야 합니다. 

보통 운동을 깊게 즐기는 사람들은 이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대회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 말이죠.

혹은 무슨 국가대표로 출전까지 하는 그런 운동선수들은 보통 이런 것들이 엄청 좋은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안 그런데 해외에선 원래 직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많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딩 교사가 사격 올림픽 대회에 나가고 커피집 사장이 바이애슬론 선수 출전하고 하는등 말이죠.

 

사람들은 외로움을 잊기 위해 때로는 미친듯이 취미생활도 알아보곤 합니다.

직장인 밴드도 있고, 자전거, 직장인 축구단, 사회인 야구단 등등 말이죠.

 

그런데 그게 지속가능한 것인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취미도 취미 나름입니다.

 

잠깐 동호회같은거 슥~ 들어갔다가 단톡방 나가는거 마냥 소리 소문도 없이 나가고 하는 이런 인스턴트적 관계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 지속가능한, 의미감 있는 사회적 유대를 느낄 수 있는 것, 당신만의 역할이 형성되어 있는 것,
커뮤니티에서 당신의 존재가 어떤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고 그런 역할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그런 친목이 필요합니다. 

친목질보고 좆목질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목은 사람이 호랑이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아닌 무리생활을 하던 인간의 생물적 본성입니다.  

어떤 집단에서 당신이 어떤 역할, 캐릭터를 맡은 채로 집단생활을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EBS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전혀 생면부지의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랜덤하게 모아서 3개월간 서로 항상 같이 정기적으로 밥 같이 먹고 시간보낸다는 극히 단순한 공동목표만 가진 채로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모여서 요리도 하고,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처음엔 어색했던 생면부지의 아저씨, 여고생, 직장남, 아줌마등이.... 


서로 오빠 삼촌식의 역할과 캐릭터가 생기고 어떤 유대감이 생기고, 서로 농담도 하고 게임도 하고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오랜 시간 지속했더니 나중에 그 그룹에 참여했단 사람들의 심혈관지수, 염증수치가 상당히 양호하게 변했습니다. 

즉, 주관적으로 의미감 있는 그런 사회 적유대를 찾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적 망을 갖추는 것은 최고의 노후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의 힘을 빌리던, 자식을 많이 낳아서 대가족을 만들던, 귀농을 해서 지역 주민이랑 전원일기를 찍던....

(물론 요즘 한국 농촌은 안그렇습니다) 

무슨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던 간에, 지속 가능한 형태로 집단이나 무리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면서 친목질을 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질 수 있게 머리를 싸메고 고민해봐야 합니다. 

특히 젊을수록 이런 부분을 잘 고려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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